제1장 격동하는 지구_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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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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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흔들리는 지구.




제 1 장.  격동하는 지구.


1.

서기 2092년 3월 12일 하오 두 시.
버뮤다 삼각해역. 날씨 맑음.

미국의 최신 과학 탐사선 미러클 호의 운영 책임자 마이클 피터슨 박사는 장미 줄기로 만든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맑은 날씨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비 오기 직전처럼 흐리기만 했다. 태양에서 내리쬐는 광선은 대기 오염물질의 미세한 입자와 수분에 반사되고 흡수되어, 대양의 수면에 이를 즈음엔 밀실의 백열등처럼 음산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빛이 일렁거리는 수면. 언제부터인가 버뮤다는 수 백 미터 아래의 해저처럼 검은빛이 감도는 죽음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저 거센 파도는 아직도 바다가 숨쉬고 있다는 걸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이 바다 밑엔 얼마나 되는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까...?”
그의 나이 오십. 해양학자가 되어 이십 년 이상을 바다에 몸바친 그였지만, 최근 오 년 동안은 세금 도둑이나 다름없었다. 명목상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월급이나 꼬박꼬박 타먹는 신세였던 것이다. 연구할 대상이 없는 데야 무슨 재주로 상부 기관에 연구 결과를 제출할 수 있겠는가?
해양의 생태계는 무너진 지 이미 오래였다. 어촌 출신의 그가 어릴 적부터 친숙하게 보아온 황다랑어며 돌고래, 가다랭이 등의 어류는 이제 해양백과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원양의 어종(魚種)들이 이러할 진데 연안의 정착성 어종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지금 이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바다의 신비란, 그저 동화 속의 얘기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 비극적인 현실은 과학과 경제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지구의 환경을 오염시킨 결과였다.
오래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환경 정화를 강력하게 주장해왔지만, 비극의 도래는 막을 수가 없었던 무력함에 그는 오랫동안 좌절감을 맛보아온 터였다.
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속에선 벅찬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늦어도 내가 죽기 전에는 해양학자라는 직업이 유명무실하지는 않게 되겠지.”
마이클은 시선을 뱃전으로 돌렸다.
미러클 호는 오십 노트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선두로부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좌우로 흩어지면서 원래의 칙칙한 빛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지긋지긋한 죽음의 빛깔과도 작별을 고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이제 지구녹지화 프로젝트의 산물인 활성유전자 GW(Green World)103이 지구상의 일만 여 곳에 살포되면, 지구는 예전의 생명력을 되찾을 것이고 대양엔 온갖 물고기가 뛰어 놀 것이다.
마이클은 파이프를 문 채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담배 연기가 섞인 답답한 공기가 폐부를 역겹게 찔렀지만, 마이클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찌뿌드드함을 털어 내려 기지개를 펴면서 통제실이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문제는 지긋지긋한 악취와 절망이 사라지는데 과연 몇 년의 세월이 걸릴까 하는 것뿐이로군”
“기간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어요. 박사님께서 그 담배 연기만 내뿜지 않는다면 이 년은 단축될 거예요.”
마이클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독백에 토를 단 사람은 통제실에 있는 일곱 사람 중 유일한 여성 안나 오코너였다. 그녀는 마이클의 조수이자 전망이 어둡기만 하던 해양학에 뛰어든 젊은 박사였다.
안나가 혀를 쏙 내밀며 말을 덧붙였다.
“박사님의 흡연도 대기 오염에 한 몫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녀 또한 기분이 고무된 듯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런...! 그러고 보면 나도 환경 오염의 주범인 셈인가?”
그녀의 애교가 묻어난 농담에 마이클이 담배 파이프를 입에서 빼어들고 어깻짓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레이더를 지켜보던 찰스 패너티가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삼 분 후면 목표지점에 도착합니다, 마이클 박사님.”
그는 전도 양양한 지질학자답게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삼십 대의 건장한 미남이었다.
“우린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줄 활성유전자 GW103을 살포한 최초의 팀원으로서 청사에 길이 남게 될 거예요.”
“그거 영광이로군.”
냉소적인 대꾸가 귀에 거슬렸는지, 안나는 눈을 크게 치켜 뜨고서 쏘아붙였다.
“찰스. 당신은 이 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군요. 그렇지 않음... 내게 불만이라도 있던가.”
“설마! 내가 비록 사교적이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여성에게 불만을 가질 만큼 목석은 아니오, 안나 오코너씨.”
찰스는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변명을 했지만, 그의 눈은 레이더에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상대를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안나는 다소 신경실적으로 소리쳤다.
“찰스!”
그녀의 격앙된 숨소리가 마이클의 귀에까지 들렸다. 미러클 호의 함장과 승무원들이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더에 고정된 찰스의 눈길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통제실의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있었다.
이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마이클은 중얼거렸다. 통제실은 물론이고 이 배의 곳곳에 무비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들의 언동 하나 하나가 그대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이 역사적인 과업을 생중계 하는 보도진들이 모두 미러클호의 갑판에 몰려 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십여 분 후면 그들의 성화같은 보도와 함께 GW103이 바다에 살포되는 현장이 전 세계에 보도될 것이었다.
마이클은 두 사람 사이로 끼어 들어가 찰스의 매끈한 뺨에 화살처럼 꽂히는 안나의 따가운 눈총을 가로막았다.
“우린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하고 있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지. 팀원끼리의 불화는 그리 자랑스런 일이 못되네.”
마이클은 안나에게 가벼운 일침을 가한 후 찰스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주의를 주었다.
“자네가 그린피스(Green Peace)의 일원이라는 사실과, 이 프로젝트에 회의적이라는 건 잘 알고 있네. 그렇지만 자네의 이런 태도가 상부에 보고되면 앞으로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있을 걸세. 난 자네 같은 유능한 과학자가 실업자로 전락하는 건 원치 않아.”
“앞으로 먹고 살 일을 걱정할 수 있다면...”
찰스는 여전히 레이더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숨 조로 중얼거렸다.
“그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일 겁니다.”
찰스는 비로소 암울한 눈을 들어 녹색 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통제실의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미러클의 갑판은 수십 명에 달하는 보도진으로 시끌벅적했다. 가까운 상공에선 각 방송사의 헬기들이 경쟁적으로 미러클 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들은 과학의 기적을 기대하며 온갖 수식에 찬 중계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인간들은 과장되고 왜곡된 꿈에 부풀겠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구의 환경을 망친 것은 인간의 과학이었다. 과학 기술로 지구 환경을 개발함으로써 인류의 문명을 풍요롭게 번성시킬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지구의 황폐화를 초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이기적인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활성유전자로써 수십 억 년 동안 진화해온 지구를 또 한번 오염시키려는 것이다.
‘보호가 아닌 개발과 변화가 부른 재앙을 익히 경험하고서도, 인간은 여전히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불과 백여 년의 역사에 불과한 과학의 힘으로 수십 억 년 동안 축적되어온 진화의 힘에 도전한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인류는 이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한단 말인가...?’
찰스는 각 국의 지도자들이 앞다투어 찬양하고 지지하는 이 획기적인 과업이 지구와 인류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환상을 떠올리면서 몸을 떨었다. 사람들의 희망에 찬 환호 속에서 공포가 피어올라 그를 으슬으슬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문득 헬기의 것과는 색다른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마이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날렵하게 생긴 비행기 한 대가 은빛을 번뜩이며 미러클 호의 상공을 배회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팔짱을 끼고서 감탄조로 중얼거렸다.
“참으로 대단한 양반이로군. 칠십 고령에도 저런 열정을 보일 수 있다니.”
안나가 물었다.
“누굴 두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마이클은 담배 파이프로 비행기를 가리켰다.
“저 비행기에 타고 있는 귀한 나리지. 영국의 국왕, 카나이마 1세 말이야. 자신의 업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려고 영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온 걸세.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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