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반란_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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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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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저 녀석 말이야...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프롬의 뱀 눈이 차갑게 번뜩거렸다. 프롬은 저 녀석... 바텐더 호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끝이 두 가닥으로 갈라진 혀가 입술 주위뿐만 아니라 코와 볼 언저리까지 훑고는 입 속으로 사라진다.
‘이놈은 생긴 꼴이나 하는 짓이 영락없는 뱀이라니까.’
크릴은 속으로 치미는 매스꺼움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프롬에 비하면 크릴은 차라리 신사적으로 생긴 편이다.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억센 머리카락에 얼굴이 온통 회색 털로 덮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박력은 찾을 수 있으니까. 이 프롬이라는 녀석에겐 도무지 정 붙일 데가 한군데도 없다.
‘어쩌다가 이런 밥맛 떨어지는 놈과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지? 신경을 쓰지 말자. 차라리 음악에나 열중하자고.’
조용한 음악이 실내 구석구석을 흐른다. 여긴 문셔틀 4호함의 레저 공간에 마련된 바(Bar). 엘리시온의 전용 휴식 공간 중 하나다. 여기선 격렬하고 빠른 비트의 음악은 금지되어 있다. 고요한 클래식이 전부다. 위험하고 섬세한 작업을 하는 엘리시온들의 감성을 자극하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려는, 심리학에 바탕을 둔 신류원의 조치였다.
백 평이 넘는 바의 모든 테이블엔 엘리시온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게 한결같이 밝고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지만 들뜬 분위기로 고조되고 있었다.
그러나 크릴과 프롬이 앉은 이 자리만큼은 예외적으로 칙칙하고 끈적끈적했다. 물론 크릴은 이런 분위기를 원치 않지만, 프롬이 있는 한 어쩔 수가 없다. 놈은 모든 분위기를 잡쳐버리는 고약한 재주가 있으니까.
잠시 침묵하며 뜸을 들이던 프롬이 더욱 느끼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저 녀석... 아까 샤워할 때 봤는데 말야...”
크릴의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프롬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놈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붉은 눈동자는 아까부터 한 사람, 호른만을 집요하게 쫓고 있었다. 그 눈빛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맹수의 그것이었다.
“겨드랑이와 팔뚝에 깃털이 수북하더군. 비둘기처럼 회백색 깃털이 말이야. 누구더라? 음... 누가 말했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저 녀석 지구에 있을 때 이십 삼 층에서 떨어져서도 살아난 적이 있었다 하더라고. 그래서 어제 유심히 살펴봤지. 저 녀석... 정말 날았을 거야. 그 정도로 깃털이 많더라고.”
프롬은 말을 하는 도중에도 연신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럴 때마가 비늘투성이의 얼굴이 실룩거리는 게 실로 역겹다.
크릴은 꼴 보기 싫은 얼굴을 외면했다. 그러고는 연갈색 액체가 찰랑거리는 유리컵을 흔들면서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글쎄... 지구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달에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어. 맨몸으론 날 수 없을 거야.”
“난 말이야...”
프롬은 갈라진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러고는 문득 아주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도 가끔은 날고기가 먹고 싶어. 어릴 적 먹던 그,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말이야. 이놈의 인스턴트는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단 말이야.”
‘이 자식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찬바람이 크릴의 턱 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듯했다. 프롬의 얼굴이 역겹기는 하지만, 크릴은 눈을 크게 뜨고서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롬은 금지된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십 년 전부터 카나이마 제국의 시민이 된 엘리시온들은 날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날고기가 엘리시온의 성격을 포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신류원의 연구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이 법규를 어긴 엘리시온은 문명권 밖으로 추방되었다. 이를 언급하기만 해도 이 년 동안 문명과 격리된 채 엄격한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다.
프롬은 나직이 키들거리면서 바 안의 엘리시온들을 턱짓했다.
“저것 봐! 생긴 꼬락서니들을 보라고. 개, 사슴, 돼지, 새... 정말 제멋대로 생기지 않았어? 인간들이 우릴 경멸하는 게 이해가 돼. 우린 야생동물이나 마찬가지야. 그런데 인간을 흉내내고 있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서로 잡아먹고 했는데 말이야. 그때만 해도 호른은 내 먹이 감 정도에 불과했을 거라고.”
크릴은 경멸과 분노를 담은 눈으로 프롬을 노려보았다. 프롬은 전혀 아랑곳 않고 연신 키들거렸다.
‘가장 제멋대로 생겨먹은 녀석은 바로 네놈이다!’
이렇게 고함치고 싶지만, 크릴은 감정을 눌러 차분히 쏘아붙였다.
“넌 머리 속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냐?”
“허연 뇌수로 가득 차 있지. 그것만큼은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리고 인간들이나 마찬가지야. 아마 맛도 다 비슷할 걸. 히히히!”
프롬은 히죽 웃었다. 그러자 독사의 독니처럼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 두 개가 살짝 벌어진 입술 밖으로 밀려나왔다.
이놈과 더 이상 같이 얘기를 해서는 안되겠다고 크릴은 생각했다.
“충고 하나 하지, 프롬. 입 닥치고 술이나 마셔! 그 헛소리가 인간들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넌 그 날로 쫓겨날 테니까. 잘 알잖아? 그들은 널 발가벗긴 채 우주선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이야.”
크릴은 ‘너 혼자면 몰라도 우리까지 피곤해진다’라는 말은 생략했다. 프롬은 남이 입는 피해 따위를 고려할 놈이 아니니까. 하긴 이런 충고조차도 프롬에겐 무용지물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놈이 신류원의 적성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해서 문셔틀에 탑승할 수 있었을까?’
프롬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자니 골치가 지끈거린다. 비좁긴 하더라도 다른 빈자리를 찾아야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크릴은 한순간 반색하여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어이, 헬튼!”
“먼저 와 있었군, 크릴.”
막 바로 들어서던 헬튼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크릴. 역시 오늘도 여기에 있었군.”
헬튼이 대답하자 크릴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헬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크릴의 테이블로 걸어갔다.
헬멧을 벗은 헬튼은 수사자처럼 풍성한 은빛 갈기로 목을 두르고 있어 무척 용맹해 보였다. 고양이과 동물처럼 세로로 찢어진 동공과 입술을 비집고 나온 송곳니 등은 상대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이제껏 능글능글하던 프롬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떨떠름한 표정이 역력하다. 언제나 음흉함을 감추지 않는 프롬이었지만, 헬튼 앞에서만큼은 이렇게 꼬리를 마는 것이었다. 헬튼에겐 충분히 그럴 만한 위압감이 있었고, 모두가 이를 인정했다.
“프롬, 크릴과 함께 있었군.”
헬튼이 테이블로 다가와 인사를 던지자, 프롬은 한 차례 특유의 송곳니 웃음을 보이고는 바의 반대편 동료들 사이로 스르르 섞여 들어갔다. 마치 바닥을 기는 뱀처럼 기분 나쁜 움직임이었다.
“네 덕을 보는군, 헬튼.”
헬튼은 크릴의 말뜻을 금방 눈치챘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피식 웃었다.
“프롬이 또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댄 거로군.”
“저 녀석은 정신이상이야. 언제고 큰 사고를 칠 거라고.”
“뭐... 그래도 지난 이 년 동안 별 탈은 없었잖아. 이제 며칠 후면 지구로 돌아갈 테니까 저 놈에겐 신경 끄라고.”
크릴은 헬튼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속삭였다.
“정도를 넘었어. 호른을 보면서 군침을 흘리더라고. 피가 뚝뚝 흐르는 살코기 맛을 보고싶다면서.”
이 대목에선 헬튼도 언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건 심각한 걸...”
이때 카운터에서 호른이 쟁반을 들고 왔다. 그는 헬튼 앞에 유리컵을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오늘도 스카치겠지, 헬튼?”
헬튼은 싱긋 웃으며 호른을 바라보았다. 호른은 엘리시온들 중엔 유난히도 덩치가 작았다.
“물론. 얼음도 한 조각 띄우면 더욱 좋고.”
헬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컵 안에서 얼음 하나가 딸그락거렸다. 헬튼의 취향이라면 훤한 호른의 배려다. 호른이 위스키 병을 기울이자 갈색 액체가 얼음 조각을 둥실 띄우며 컵에 차 올랐다.
헬튼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고마워, 호른. 오늘따라 색깔이 더욱 맛깔스럽군.”
호른은 몸을 돌려 카운터로 걸어가면서 살짝 손을 흔들었다.
“천만에. 오늘은 특별히 병째 두고 갈 테니까 맛이라도 실컷 즐기라고. 취할 수 없는 아쉬움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이곳이 바이니 만큼 각종 술이 구비되어 있다. 물론 알코올 성분은 없고 맛만 그럴싸하게 모방한 것이지만. 이 가짜 술의 주성분이 우주선에서 생활하는 인간과 엘리시온들의 배설물에서 추출, 합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아무도 마시고 싶지 않을 것이다.
헬튼과 크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위스키 컵을 높이 치켜들었다.
“축배를 들자고. 귀향(歸鄕)을 위해!”
이와 때맞춰 바 룸 여기저기서도 건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과의 재회를 위해 건배!”
“지긋지긋한 달과의 이별을 위해 건배!”
달에 중력발생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은 오늘로써 종료되었다. 이제 333 개에 달하는 중력발생장치를 모두 가동시키면 달에서 수행해야할 임무는 완전히 종결되는 것이었다. 그 일은 문셔틀에 탑승한 인간들의 몫이었다. 그러고 불과 일주일이면 해결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따라서 이곳의 엘리시온들에겐 지구로 돌아갈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즐기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건 경사스런 일이었다.
모두가 감회에 젖거나 기대에 부풀어 있다. 참으로 고되고 참담한 나날들이었다. 그 동안 백 명이 넘는 동료들이 진공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고향을 떠나 척박한 땅에서 동료를 장사지내는 일은 서글프고도 두려운 일이었다.
헬튼과 크릴인들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서글픔이나 두려움의 감정을 훌훌 털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릴은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헬튼.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뭘 할거야?”
“얼마 되지는 않지만 지난 이 년 동안 모아둔 돈도 있고 하니... 교외로 빠져나가 아담한 집을 짓고 살까 해. 이제 인간들과 함께 하는 생활에는 넌덜머리가 났어. 인간들과 비교되는 건 너무나 끔찍하니까.”
“젠장! 홀몸이라서 좋겠군. 그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겠다고 해도 말릴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야.”
“부러워만 말고 너도 그러지 왜?”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지 말이야. 난 처자식이 있지 않나? 마누라는 도시의 생활을 동경하고 있어. 언젠가는 인간들처럼 호화로운 저택에 살면서 자가용을 굴릴 꿈에 부풀어 있다고. 게다가 이놈의 자식들을 보면 아예 절망이야.”
크릴에겐 일곱 살 난 아들과 여섯 살 난 딸이 하나씩 있었다. 그 아이들은 소위 학교라는, 문명 생활을 위한 교육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외양은 엘리시온이지만, 머리 속은 완전히 인간인 것이다.
크릴은 씁쓰레한 웃음을 짓다가 컵에 술을 채우고는 훌쩍 마셔버렸다.
“요 녀석들은 인스턴트 식품이 없으면 못살아. 자연 식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가 없으면 잠을 못 자고 거친 땅을 걷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지. 이제 내가 누릴 자유라는 건 없어.”
“하긴...”
헬튼은 크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엘리시온들은 도시와 원시 자연을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십 오 년 전부터 금지되었다. 엘리시온들은 강제적으로 인간 문명에 편입되어야 했다. 이를 거부한 엘리시온들은 두 번 다시 도시로 돌아올 수 없었다. 일단 문명의 맛을 본 대부분의 엘리시온들은 이런 조치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인간과 엘리시온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완전히 묶였다.
그 이후... 원시 자연에서 살았던 엘리시온들은 대부분 야성의 자유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문명의 편리함은 자유를 보상해줄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들은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고 자라난 자녀들 때문이었다. 자녀들의 세대는 도시의 화려함을 떠나 살 수 없었다. 그들 눈에 비친 광대한 자연은 미개함의 상징이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부모들은 그러한 아이들을 자연으로 내몰 수가 없었다. 지금의 부모들이 죽고 난 후면 원시의 자유는 엘리시온으로부터 완전히 망각될 것이었다.
이러한 운명적인 흐름을 헬튼은 희미하게나마 의식하고 있었다. 헬튼은 처연함에 젖은 크릴을 바라보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넨 자식들 때문에 평생 문명의 틀에 짜여 살아야 하겠지. 하지만 자유를 향한 바람만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네.”
그러하기에 크릴은 더욱 불행해질 것임을 헬튼은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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