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반란_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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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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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셔틀 1호 함장실.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벌써 열 번째 같은 구호를 반복하면서 함장 볼 애드윈과 부함장 존 힐튼은 컵을 부딪쳤다. 컵 안의 얼음이 딸그락거리고 적갈색 액체가 튀어나와 손등을 상쾌하게 적신다. 물론 이 술은 스코틀랜드 산 정통 위스키였다. 인간과 엘리시온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의 범위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교의 대상이 함장이나 부함장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물론 우주선 내에서의 음주는 금기 사항이었다. 두 사람의 이 장면은 카메라를 통해 컴퓨터에 기록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적당히 취하는 체 술기분만 내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게 진짜 술이라는 걸 스스로 입밖에 꺼내지만 않는다면 카메라에 잡힌 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카메라엔 코가 달리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의 얼굴은 제법 붉게 상기되었다. 즐겁게 술을 마시던 중 볼이 문득 애석해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자넨 섭섭하겠군.”
“무슨 뜬금없는 말씀이십니까?”
“자넨 문셔틀 예찬론자가 아닌가? 문셔틀이야말로 우주를 항해하는 파라다이스라며? 이제 곧 지구로 귀환하면 파라다이스를 떠나야할 터인데 당연히 섭섭할 게 아닌가?”
존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난 또...”
이 년 동안 우주 속의 갇힌 공간에서 생활하고도 가족의 품이 그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요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함장님도... 지구를 떠나올 적에 한 농담을 아직도 기억하고 써먹다니.’
존의 어색한 몸짓이 재미있었던지 볼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농을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 귀환하면 다시 문셔틀을 탈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네. 자넨 자칫 인생의 낙을 잊어버리게 생겼어.”
“함장님은 좋겠군요. 돌아가면 어쩔 수 없이 끊었던 담배를 필 수 있을 터니 말입니다.”
볼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담배 맛을 잊어버렸어. 막상 담배를 보아도 그리 반갑지 않을 것 같구먼.”
“저런! 함장님도 한 가지 낙을 잊어버렸군요. 저처럼.”
“그런 셈이지. 그러고 보면 우린 공통점이 있군 그래.”
“하하하!”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함장실을 가득 메울 때다. 문득 술병 옆의 테이블 스피커에서 승무원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함장님 앞으로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발신처는 신류원입니다. 모니터를 보시기 자랍니다.”
“신류원에서 직접...?”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린 순간, 볼은 대번에 술기운이 확 달아나고 말았다.

볼 애드윈 문셔틀 1호함 함장 앞.
달에 설치한 인공중력발생장치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해 유지보수인력이 필요하게 되어 문셔틀 4호함의 승무원들과 군인, 설치 기술자들을 달에 잔류시키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그들을 통솔할 책임자 또한 문셔틀 4호함의 하이네먼 함장이 되어야 할 것이나, 하이네먼 함장의 건강상태가 불량하다는 보고에 근거하여 볼 애드윈 문셔틀 4호함 함장을 유지보수인력의 통솔자로 임명하는 바이다. 자세한 지시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전문의 끝 하단엔 카나이마 1세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일단 황제의 명이 떨어지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젠장...”
볼은 암담했다. 암담함은 곧바로 주체하기 힘든 흥분으로 변했다.
“젠장맞을!”
볼은 홧김에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 바람에 술병이 넘어질 듯 흔들거렸다.
“지난 이 년 동안 담배를 못 핀 것만 해도 죽을 지경인데 더 남으라고? 대체 얼마나 더 있어야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야?”
부함장 존은 재빨리 볼의 손을 잡아끌면서 나직이 속삭였다.
“폐하의 명령에 대한 항변은 중형입니다. 지금 함장님의 모든 행동이 카메라를 통해 기록되고 있으니 진정하십시오.”
볼은 다시 한 번, 그러나 방금 존이 속삭인 것보다 훨씬 낮아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젠장맞을!”
볼이 가까스로 이성을 회복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존은 속으로 웃었다.
‘짐짓 태연한 척 담배 맛을 잊어버렸다더니... 사실 속으로는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고 있었군.’
그러나 존의 시선이 모니터에 이르는 순간, 그 웃음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놀람으로 변했다. 모니터의 하단에서 존 힐튼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름이 거론되어 좋을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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