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반란_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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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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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너희들 그거 알아?”
세로로 찢어진 눈을 희번덕거리며 뒷골목의 건달 같은 폼으로 한쪽 다리를 건들거리고 있는 녀석은 프롬이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엘리시온들 중 하나가 물었다.
“무얼?”
“어제 마이너가 죽었을 때 우주복 밖으로 꾸물꾸물 기어 나오던 것 말이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프롬이 하는 짓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던 크릴은 눈을 흘기며 투덜거렸다.
“젠장! 저 녀석... 그 끔찍한 얘기는 왜 들먹이는 거야?”
여기는 문셔틀 4호함의 대강당. 대략 칠 백 명이 넘는 엘리시온들과 인간 승무원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이었다. 인간은 인간들끼리, 엘리시온은 엘리시온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비교적 가까운 곳의 말소리 마저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주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프롬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제 내가 마이너의 시체를 끌고 오지 않았나? 헬멧을 열어봤더니 그거 마이너의 입과 항문에서 기어 나왔더라고. 눈알은 툭 튀어나와 대롱거리고... 체액이란 체액은 모조리 빠져나가서 몸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지.”
어제 그 참사를 목격했던 동료들은 벌써 역겨운 표정들이었고, 그 중엔 매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구역질하는 놈도 있었다.
‘저 녀석! 아까부터 하는 짓이 영 맘에 들지 않더니...’
친한 동료의 죽음을 장난삼아 화제로 올리는 건 크릴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 틈 사이로 몸을 불쑥 내밀면서 소리쳤다.
“그만 해, 프롬!”
프롬은 크릴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마이너 그 녀석! 평소 잘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속은 역시 더러운 똥과 구린내뿐이었거든. 그전에 죽은 놈들과 다를 게 없더라고.”
녀석은 파충류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손으로 코앞을 휘휘 내젓는다. 일부러 크릴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식!”
크릴은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다. 동료 두엇을 거칠게 밀치고 나와 프롬에게 달려들었다.
크릴의 주먹이 프롬의 얼굴에 작렬하려는 찰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억센 손이 튀어나와 크릴의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헬튼?”
어느 틈인지 헬튼이 크릴 뒤에 와 있었다.
“왜 날 말리는 거지, 헬튼?”
“인간들 앞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꼴을 보이고 싶나?”
헬튼은 크릴의 주먹을 풀어주면서 나직이 말했다.
“누구나 똑 같아. 마이너도 우리도...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처지라는 건 똑 같지. 프롬의 말엔 적어도 그것에 대한 항변이 담겨 있어.”
헬튼은 마이너의 비참한 최후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마이너의 공포에 떨던 표정을 보았기에 더욱... 그러하기에 프롬의 빈정거림이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항변이라고? 프롬이?”
크릴은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헬튼, 넌 지금 잠에서 들 깨었나보군. 너무 감상적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프롬이 정의의 항변이라니... 나 참!”
“장례비와 가족에 대한 위로금 삼 백 크레디트. 이것이 마이너가 남긴 전부였어.”
헬튼의 어조는 잔잔했다. 그러나 그 속엔 누군가가 파문을 던지기만 하면 금새 해일로 돌변할 분노가 움트고 있었다.
프롬이 즉시 토를 달았다.
“우리 한 달 치 월급이 백 오십 크레디트야! 억울한 죽음의 대가가 두 달치 월급이었다고!”
이때 근처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인간들 중 하급 승무원이 받는 월급과 비교해도 십 분의 일에 불과한 액수지. 빌어먹을!”
이번엔 다수가 동시에 소리쳤다.
“빌어먹을 녀석들!”
비록 인간들의 이목이 두려워 맘놓고 고함을 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주변의 엘리시온들은 눈에 띠게 흥분하고 있었다. 마이너의 비참한 죽음과 자신들의 구차한 현실은 분노를 부르기에 충분한 이슈였던 것이다.
기류가 가파르게 고조되는 걸 느끼면서 프롬은 히죽히죽 웃었다. 그는 징그럽게 미끈둥한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녀석이야. 마이너를 죽인 놈...”
프롬의 손가락을 따라 수십 쌍에 달하는 분노의 화살이 날아갔다. 이 많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행운을 누리는 녀석은 대강당의 강단에 걸터앉은, 금발에 뻐드렁니가 드러난 백인이었다.
“프리츠라고... 독일 지구에서 차출된 군인이라지 아마.”
이 순간 프리츠는 증오의 상징이 되어 엘리시온들의 눈동자에 확대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본인은 이를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지만...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어. 가끔씩은 괴물을 때려잡는 낙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 빌어먹을 법 때문에 지구에선 꿈도 못 꿀 일이지. 하지만 여기서는 정당하다고. 우주 공간에서의 사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프리츠는 평소 습관대로 금발을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이 금발은 프리츠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주근깨투성이의 얼굴과 뻐드렁니는 아무래도 남에게 내세우기 부끄러우니까.
“헤이, 프리쯔. 듣고 보니 그 일이 적성에 딱 맞는 모양인데, 돌아가면 다시 한 번 달로 보내달라고 청원해보지 그래.”
농을 던진 녀석은 프리츠와 함께 독일 지구에서 차출된 군인 로데커였다.
프리츠는 짐짓 과장되게 이마를 탁 치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충고 고마워, 로데커!”
“와하하하하!”
주변의 동료군인들이 일제히 웃었다. 프리츠는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시시덕거렸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 바탕 홍소가 지나간 후 로데커가 물었다.
“프리츠, 그 동안 몇 놈이나 보냈지? 아마 그 방면엔 네가 최고 기록일 것 같은데.”
“글쎄...”
열 손가락을 활짝 펴고서 숫자를 세던 프리츠는 혀를 찼다.
“이런... 두 손으로는 모자라는군.”
그는 좌우의 엄지손가락 사이에 코를 끼우고는 으스대면서 소리쳤다.
“난 정확히 열 한 놈이라고. 열 한 놈! 바로 어제도 짜릿한 손맛을 보았단 말이야.”
지난 이 년 동안 문셔틀 4호의 엘리시온 사망자 수는 107명. 그 중 대부분은 부주의, 혹은 예상 못한 사고에 의한 사망이었다. 그러나 프리츠와 관계된 사망사고는 거의가 고의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츠의 열 하나라는 숫자는 대단한 기록이긴 했다.
로데커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비아냥거렸다.
“어제라면 그 마이너란 놈 말이지? 글쎄... 네 전기봉에 한 대 맞고 제풀에 드릴에 찔려 죽었는데 그리 재미있었을까?”
어제 마이너를 죽일 때 같이 있던 동료가 바로 로데커다. 프리츠는 로데커를 힐끔 노려보면서 투덜거렸다.
“젠장! 손맛이란 말은 취소하지. 그냥 짜릿한 기분이었어. 아무튼...”
더욱 목소리를 높여 말하려던 프리츠는, 그러나 입을 도로 다물어야 했다. 뒤편에서 위압적인 고함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일동 주목! 거기 강단에 앉은 병사는 빨리 아래로 내려가라!”
프리츠는 불에 댄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엉덩이를 들었다. 사람 가슴 높이의 강단에서 뛰어내리고 보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두 사람이 서 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난 문셔틀 1호함의 함장 볼이다.”
볼 함장 곁의 사내는 바로 존 부함장이었다.
볼은 강단 끝으로 걸음을 내딛고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의 희생을 아끼지 않은 노력 덕분에 문셔틀 호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할 수 있었다. 4호함의 하이네먼 함장이 병환 중이라 내가 대신하여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다. 이제... 여러분의 일정을 말해주겠다.”
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에게 반갑지 않은 소식을 들려주려니 목에 가시가 돋친 듯하다.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달에 설치한 인공중력발생장치의 가동에 들어갈 것이다. 이 일을 성공리에 끝내면... 문셔틀 1,2,3호함은 지구로 귀향한다.”
이때까지도 강단 아래의 인간들과 엘리시온들은 볼의 말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볼은 그들의 가슴에 차가운 비수를 꽂았다.
“그러고 문셔틀 4호함의 모든 승무원들은... 앞으로 달에 계속 남아 인공중력발생장치의 유지보수를 담당해야 한다. 문셔틀 4호함만이 유일하게 바이오스피어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다. 앞으로 하이네면 함장을 대신하여 나와 존 부함장이 여러분들을 통솔할 것이다.”
시끌벅적하던 강당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모두가 얼어붙은 동상이 되었다. 한겨울처럼 싸늘한 바람이 그 동상들 사이를 휘돌고 지나가는 듯했다.
얼이 빠진 승무원들을 내려다보면서 볼 애드윈은 더욱 차분해진 어조로 말을 이었다.
“갑작스런 명령이라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건 황제 폐하의 명이다. 이의가 없을 줄 안다. 모두들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오늘은 특별히 지구의 친지들에게 편지를 쓸 시간을 주겠다. 이 함선에 타고 있는 시민들 모두에게. 이상이다!”
시민들 모두라면 엘리시온들까지도 포함되었다. 볼 함장은 나름대로 배려한 것이다. 원래 엘리시온들에겐 반년에 한 번 친지에게 편지를 쓸 기회가 주어졌을 뿐이니까.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그런 배려는 그들이 받고 있는 충격에 비하면 바다 속의 모래알에 불과했다.
‘계약과 다르잖아? 우리가 왜 이곳에 남아야 하지?’
엘리시온들의 머릿속에 한결같이 떠오른 의문점이었다. 그러고 이런 의문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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