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반란_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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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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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침내 문셔틀 1,2,3호함은 달을 떠났다. 죽음이 감도는 어둔 공간에 세 줄기 불꽃만을 남겨놓고서... 이제 문셔틀 4호함만이 달에 남겨진 것이다. 4호함의 모든 승무원들은 더욱 처절한 고독과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러고 신임 함장 존은 승무원들의 투쟁심을 북돋워 주고, 때로는 그들이 유순해지게끔 어루만져주는 막중 대임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초반부터 존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야 했다. 그를 괴롭히는 건 군의관이 뒤늦게 올린 보고서와 그에 첨부된 샘플 케이스의 내용물이었다.
존은 샘플 케이스를 만지작거리면서 쓰디쓴 독백을 흘렸다.
“내가... 실수한 걸까?”
지구로 강제로 송환된 볼 함장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고통스럽게 휘감았다. 볼 함장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이 샘플 케이스의 내용물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처벌이냐 방관이냐. 존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동안, 함장실 밖에서 블론 대위의 음성이 들렸다.
“헬튼을 데리고 왔습니다, 함장님.”
존은 지긋이 이를 악물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들여보내게.”
방문이 열리고 헬튼이 들어왔다. 며칠 간의 심한 고초에도 불구하고 헬튼은 당당했다. 대부분의 엘리시온들은 덩치와 눈빛이 위압적인 면이 있었다. 헬튼은 덩치로 따지자면 그들 중에서 특출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 눈빛과 은연중에 풍기는 기품은 확실히 남달랐다. 이렇게 눈앞에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존이 두려움을 느낄 만큼.
‘볼 함장의 말대로 확실히 이놈은 위험한 존재다.’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한 만큼 섣불리 다뤄서는 안 될 일이지.’
이 순간 존은 자신의 방침을 세웠다. 그는 테이블을 돌아 헬튼과 마주섰다. 존의 키는 작지 않은 편이었지만, 헬튼에 비하면 턱 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헬튼은 존의 눈을 마주보면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무언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헬튼...”
존은 테이블 위의 보고서와 샘플 케이스를 집어들면서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신류원의 결정에 따라 넌 무죄 방면이다. 그러고 프롬은 내일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전임 함장께선 지구로 송환되었고...”
존은 천천히 발걸음을 방문 쪽으로 옮겼다.
“함께 걷지 않겠나?”
헬튼은 묵묵히 존의 뒤를 따랐다. 블론 대위와 두 명의 병사가 함장실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존은 그들을 물리치고서 헬튼과 함께 걸었다. 복도를 몇 번 꺾어 돌면서 존은 표나지 않게 천장을 훑어보았다. 설치된 카메라가 없음을 확인한 그는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난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 볼 함장의 판단이 옳았어.”
헬튼은 처음엔 존의 의중을 짐작할 수 없었다. 존이 내민 샘플 케이스를 무심코 바라볼 때까지도. 그러나 딸깍, 하는 소리와 더불어 케이스가 열리는 순간 헬튼은 가슴이 철렁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케이스엔 은빛이 감도는 털 한 오라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털이 누구 것인가는 깊이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결정적인 실수를 남긴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치열한 눈싸움이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 이 짧은 시간의 침묵이 헬튼의 가슴을 뻐근하게 윽박지르고 있었다.
“헬튼...”
존은 케이스를 도로 닫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지난 일이고, 난 더 이상 소란을 원치 않네. 두 번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안도감이 헬튼의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헬튼은 약간은 고마움을 띤 음성으로 응대했다.
“우린 호사를 원하지 않소. 단지 억압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이 머나먼 우주까지 날아와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나 또한 이곳에 평화가 깃들이길 간절히 기원하네. 병사들을 철저히 단속할 것을 약속하지. 하지만 자네 또한 내게 진 빚을 잊지 않길 바라네.”
존은 우호적인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내밀었다. 헬튼은 존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통해서 두 사람의 내심이 교환되었다. 이 악수야말로 서로를 존중하는 숭고한 의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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