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흔들리는 지구_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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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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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다음날. 희망의 땅 전진 기지.
마침내 문셔틀 4호는 기다란 불꽃만을 남긴 채 달을 떠났다. 십 칠 년만의 귀환이다. 문셔틀 4호함의 인간들은 지구로 돌아가 풍요롭고 안락한 여생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헬튼을 비롯한 문셔틀 4호함의 엘리시온들은 귀향을 기약할 수 없었다. 광장에 모여서 찬란한 태양 빛 너머로 사라지는 문셔틀을 바라보는 엘리시온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한의 눈물이었다.
“이젠... 차라리 희망을 품지 않겠어.”
누군가의 한탄을 들으면서 헬튼은 마음 속으로 뇌고 또 뇌었다.
‘그렇다. 희망은 날개를 접었다. 우린 버려졌어. 우리에겐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헬튼은 동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모두가 눈에 띠게 늙어 있었다. 젊고 건장하던 크릴도, 헬튼 자신도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건만, 달의 모든 것은 변하고 말았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들은 잊혀져 가는 거다.’
서글픔이 밀려든다. 심신이 끝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살을 저미는 듯한 흐느낌이 헬튼의 정신을 퍼뜩 일깨웠다. 크릴이었다. 그는 석상처럼 몸이 굳은 채 문셔틀이 사라져버린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면서 울고 있었다.
헬튼은 크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크릴... 너도 희망을 버렸나?”
크릴은 망연자실하여 중얼거렸다.
“내가 고향을 떠나올 때... 아들은 일곱 살이었고 딸은 여섯 살이었어. 이젠 모두 어엿한 청년과 숙녀가 되었겠지.”
“자넬 닮아서 씩씩하고 아름다울 거야.”
“그럴 거야. 하지만 헬튼... 어느 날 우연히 내 자식들과 마주친다면... 내가 걔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말야... 난 타인이 된 것 같아. 일 년에 두 번씩 주고받던 편지조차 끊어진지 벌써 십 년.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시는지... 내가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난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헬튼은 홀몸이었지만, 동료들 대부분은 고향에 부모와 가족이 있었다. 그들의 절망과 슬픔은 헬튼보다도 몇 배는 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 그들은... 영원히 자네의 가족일세.”
헬튼은 크릴의 손을 꼭 쥐었지만 더 이상 위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병사 두 명이 광장으로 들어오면서 헬튼의 이름을 불렀다. 헬튼이 대답하자 그들은 곧장 다가와 말했다.
“총독께서 널 찾으신다.”
그 두 사람은 헬튼을 총독실로 안내했다. 프리밍거 총독은 밝게 웃으면서 헬튼을 맞았다.
“존 함장으로부터 자네에 대한 얘길 들었네. 자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더군.”
인간이, 그것도 이곳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총독이 엘리시온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헬튼은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프리밍거가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온 지 17년이 되었소. 우린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소?”
“애석한 일이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는 프리밍거의 낯빛이 침울하게 물들었다.
“기약할 수가 없네. 존 함장은 자네들을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네.”
“장담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네.”
헬튼은 실망하지 않았다. 예상한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절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오?”
프리밍거는 까마득한 상관을 앞에 두고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는 헬튼에게 은근히 감탄했다.
“자네들을 돕고 싶어서네. 그러기 위해선 자네들이 원하는 걸 알고, 또한 내가 원하는 걸 자네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지.”
“우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소.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오.”
“그 문제는...”
프리밍거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존 함장과 마찬가지일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네들의 고충을 폐하께 상신(上申)하는 정도이지. 물론 이 마저 폐하께 제대로 전달될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헬튼은 불가능한 것을 계속 어길 정도로 무모하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었다.
“저희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십니까?”
문득 프리밍거의 낯빛이 신중하게 가라앉았다.
“십 오 년 전... 프리츠 중사의 살인 사건 때문에 모든 병사들은 신경이 날카롭네. 단 한번의 사고였지만, 그 일로 인해 자네들을 호전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여차하면 병사들이 과민하게 반응하여 불상사가 일어날 소지가 많다는 게 나의 생각일세.”
헬튼은 비로소 프리밍거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프리츠 중사를 해쳤다는 사실을 존 함장이 일러 준 모양이군.’
그러나 미안한 감정보다는 은근한 반감이 인다. 헬튼은 프리밍거를 지긋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우린 언제나 약자였소. 울분을 삼켜야 하는 쪽이었소. 그 울분이 쌓이고 쌓여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오. 우릴 속이거나 억압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고가 발생할 까닭이 없소.”
속인다 함은 바로 기약 없는 귀향을 가리키는 것쯤은 프리밍거도 알 수 있었다.
“잘 알고 있네. 그래서 하는 말일세. 병사들이 자네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네. 서로 간에 협조가 필요해. 적당히 우호적이면서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하지. 그래서 당부하는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자넬 믿겠네. 어찌 되었던 간에 자넨 이곳의 엘리시온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헬튼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에, 등 너머로 프리밍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절하면서도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자네들과 난 다 같이 황제 폐하를 모시는 시민들일세. 난 진심으로 자네들을 존중하네.”
“그 마음 변치 않으시길...”
존 함장과 마찬가지로 프리밍거 총독 또한 엘리시온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몇 안 되는 인간들 중 한 명이라고 헬튼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엘리시온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총독실이 있는 사령 건물을 나서면서 헬튼은 눈부심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먼 우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맑고 푸르구나...”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먹장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를 뿐이었다.
“헬튼!”
문득 앞쪽에서 헬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크릴이었다. 헬튼이 걱정되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을 터인데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헬튼은 크릴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러고 이 순간 그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돌아갈 수 없다면, 영영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가 이 땅에 뿌린 피와 땀의 권리라도 찾을 것이다.’
다음날. 희망의 땅 전진 기지.
마침내 문셔틀 4호는 기다란 불꽃만을 남긴 채 달을 떠났다. 십 칠 년만의 귀환이다. 문셔틀 4호함의 인간들은 지구로 돌아가 풍요롭고 안락한 여생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헬튼을 비롯한 문셔틀 4호함의 엘리시온들은 귀향을 기약할 수 없었다. 광장에 모여서 찬란한 태양 빛 너머로 사라지는 문셔틀을 바라보는 엘리시온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통한의 눈물이었다.
“이젠... 차라리 희망을 품지 않겠어.”
누군가의 한탄을 들으면서 헬튼은 마음 속으로 뇌고 또 뇌었다.
‘그렇다. 희망은 날개를 접었다. 우린 버려졌어. 우리에겐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헬튼은 동료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모두가 눈에 띠게 늙어 있었다. 젊고 건장하던 크릴도, 헬튼 자신도 어느덧 중년이 되어 있었다. 지구는 여전히 푸르고 아름답건만, 달의 모든 것은 변하고 말았다.
‘이 변화 속에서 우리들은 잊혀져 가는 거다.’
서글픔이 밀려든다. 심신이 끝 모를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살을 저미는 듯한 흐느낌이 헬튼의 정신을 퍼뜩 일깨웠다. 크릴이었다. 그는 석상처럼 몸이 굳은 채 문셔틀이 사라져버린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면서 울고 있었다.
헬튼은 크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크릴... 너도 희망을 버렸나?”
크릴은 망연자실하여 중얼거렸다.
“내가 고향을 떠나올 때... 아들은 일곱 살이었고 딸은 여섯 살이었어. 이젠 모두 어엿한 청년과 숙녀가 되었겠지.”
“자넬 닮아서 씩씩하고 아름다울 거야.”
“그럴 거야. 하지만 헬튼... 어느 날 우연히 내 자식들과 마주친다면... 내가 걔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말야... 난 타인이 된 것 같아. 일 년에 두 번씩 주고받던 편지조차 끊어진지 벌써 십 년.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시는지... 내가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어. 난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헬튼은 홀몸이었지만, 동료들 대부분은 고향에 부모와 가족이 있었다. 그들의 절망과 슬픔은 헬튼보다도 몇 배는 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 그들은... 영원히 자네의 가족일세.”
헬튼은 크릴의 손을 꼭 쥐었지만 더 이상 위로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때 병사 두 명이 광장으로 들어오면서 헬튼의 이름을 불렀다. 헬튼이 대답하자 그들은 곧장 다가와 말했다.
“총독께서 널 찾으신다.”
그 두 사람은 헬튼을 총독실로 안내했다. 프리밍거 총독은 밝게 웃으면서 헬튼을 맞았다.
“존 함장으로부터 자네에 대한 얘길 들었네. 자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더군.”
인간이, 그것도 이곳에서 가장 높은 신분의 총독이 엘리시온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헬튼은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프리밍거가 용건을 꺼내기도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온 지 17년이 되었소. 우린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소?”
“애석한 일이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는 프리밍거의 낯빛이 침울하게 물들었다.
“기약할 수가 없네. 존 함장은 자네들을 지구로 귀환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네.”
“장담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네.”
헬튼은 실망하지 않았다. 예상한 대답이기 때문이었다.
“절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오?”
프리밍거는 까마득한 상관을 앞에 두고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는 헬튼에게 은근히 감탄했다.
“자네들을 돕고 싶어서네. 그러기 위해선 자네들이 원하는 걸 알고, 또한 내가 원하는 걸 자네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지.”
“우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소. 우리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오.”
“그 문제는...”
프리밍거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존 함장과 마찬가지일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네들의 고충을 폐하께 상신(上申)하는 정도이지. 물론 이 마저 폐하께 제대로 전달될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헬튼은 불가능한 것을 계속 어길 정도로 무모하지 않았다. 그는 화제를 바꾸었다.
“저희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십니까?”
문득 프리밍거의 낯빛이 신중하게 가라앉았다.
“십 오 년 전... 프리츠 중사의 살인 사건 때문에 모든 병사들은 신경이 날카롭네. 단 한번의 사고였지만, 그 일로 인해 자네들을 호전적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야. 여차하면 병사들이 과민하게 반응하여 불상사가 일어날 소지가 많다는 게 나의 생각일세.”
헬튼은 비로소 프리밍거가 자신을 부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프리츠 중사를 해쳤다는 사실을 존 함장이 일러 준 모양이군.’
그러나 미안한 감정보다는 은근한 반감이 인다. 헬튼은 프리밍거를 지긋이 노려보면서 말했다.
“우린 언제나 약자였소. 울분을 삼켜야 하는 쪽이었소. 그 울분이 쌓이고 쌓여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오. 우릴 속이거나 억압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고가 발생할 까닭이 없소.”
속인다 함은 바로 기약 없는 귀향을 가리키는 것쯤은 프리밍거도 알 수 있었다.
“잘 알고 있네. 그래서 하는 말일세. 병사들이 자네들을 억압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네. 서로 간에 협조가 필요해. 적당히 우호적이면서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하지. 그래서 당부하는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자넬 믿겠네. 어찌 되었던 간에 자넨 이곳의 엘리시온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헬튼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에, 등 너머로 프리밍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절하면서도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자네들과 난 다 같이 황제 폐하를 모시는 시민들일세. 난 진심으로 자네들을 존중하네.”
“그 마음 변치 않으시길...”
존 함장과 마찬가지로 프리밍거 총독 또한 엘리시온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몇 안 되는 인간들 중 한 명이라고 헬튼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이 엘리시온들의 소망을 이루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총독실이 있는 사령 건물을 나서면서 헬튼은 눈부심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먼 우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맑고 푸르구나...”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먹장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를 뿐이었다.
“헬튼!”
문득 앞쪽에서 헬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크릴이었다. 헬튼이 걱정되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을 터인데도 이렇게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헬튼은 크릴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러고 이 순간 그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돌아갈 수 없다면, 영영 돌아갈 수 없다면... 우리가 이 땅에 뿌린 피와 땀의 권리라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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