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흔들리는 지구_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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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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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카나이마 1세가 운명하던 바로 그 시각. 런던 인근 원시림의 UFO.

아이헨도르프는 지난 팔십 년 동안 그에게 달이주계획에 필요한 과학 지식을 전수해주었던 아르고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르고스... 너와 내가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오르는구나. 그때 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듯한 경이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넌 나의 스승이자 평생을 같이한 인생의 동반자였어...”
“그런 감상적인 말씀은 처음이시군요.”
아이헨도르프는 황금빛에 둘러싸인 아르고스를 바라보았다. 찰랑거리는 금발에 금빛이 아른거리는 얼굴, 파란 눈동자, 등뒤로 오로라처럼 일렁거리는 황금빛 날개... 처음 보았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아르고스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아름답구나. 하지만 난 이렇게 거동조차 힘든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아르고스는 살풋 미소를 머금었다.
“박사님은 열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팔십 년 전처럼 여전히...”
아이헨도르프는 씁쓸히 웃었다.
“열정이라... 허허허! 나의 열정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느냐? 사람의 생명은 영원하지 못하다. 이것이 날 슬프게 하는구나.”
“생명체는 죽기 마련이에요.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이죠.”
“영생은 정녕 불가능한 것이냐?”
“그래요.”
“네가 아는 과학 지식으로도 영생의 해답을 찾을 수가 없느냐?”
“...”
아르고스는 대답 대신 눈을 깜빡거렸다. 그녀의 신비한 눈빛이 아이헨도르프의 눈을 뚫고 들어와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듯했다.
아이헨도르프는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찔끔했다.
‘나의 속마음을 읽은 걸까?’
그의 나이 백 한 살. 죽음이 가까운 나이였다. 이를 극복하고자 신임할 수 있는 과학자들을 달로 보낸 그였다. 이제 그 연구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수년 내에 영생의 비밀이 풀릴 듯도 했다. 죽기 전에 영생을 얻을 수 있을 듯도 했다. 그러나 불안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까닭에 노파심이 일었다. 과연 내가 죽기 전 영생의 비밀이 풀릴 것인가? 아니, 도대체 영생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이헨도르프는 이런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어 아르고스에게 전에 없던 대화를 유도했던 것이다.
한참을 응시하던 아르고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생명의 진화는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죽지 않으면 진화는 있을 수 없죠. 따라서 생명체는 영원히 살 수 없어요. 이 우주가 영원하지 않듯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와락 밀려드는 불안감에 심장이 마구 곤두방망이질 친다. 아르고스는 인간보다 몇 백년인지 몇 천년인지 모를 정도로 앞선 과학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고스는 영생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런 걸까? 그렇다면 달에서 수행되고 있는 연구는 결국 부질없는 짓이란 말인가?
아이헨도르프가 허망함에 몸부림칠 때, 문득 아르고스가 처량하게 말했다.
“이제...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군요, 아이헨도르프 박사님.”
뜬금없는 소리다. 아이헨도르프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아르고스?”
“애초의 예정으로는 십이 년 후가 되어야 했지만... 저는 그분과의 정신감응을 통해 작동되도록 프로그램 되었어요. 이제 그분의 의식이 소멸하고 있어요. 저 또한 소멸할 거예요.”
“소멸하다니...?”
“그분의 의식이 소멸하고 있어요. 저도 곧 소멸할 거예요.”
아르고스의 형제가 흔들리면서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희미해졌다.
이 갑작스런 변화가 혼란스럽다. 아이헨도르프는 다급히 소리쳐 물었다.
“그분의 의식이 소멸하다니? 폐하께서 돌아가신다는 말이냐?”
아르고스의 형체와 음성이 더욱 희미해졌다.
“이별이군요.... 안녕히 계세요... 박사님...”
아르고스의 금광이 돌연 강렬해지는가 싶더니 일시에 사라졌다. 아르고스가 있던 자리엔 아무 것도 없었다.
“아르고스! 아르고스!”
아이헨도르프는 당황하여 소리치면서 두리번거렸다. 아르고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거울처럼 매끈한 바닥과 둥근 벽, 둥근 천장... 은빛 일색의 텅 비어버린 방안에는 아이헨도르프만이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이별이라니... 이별이라니...”
멍청하게 서서 중얼거리던 아이헨도르프는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분의 의식이 소멸했다고...? 폐하가 돌아가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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