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흔들리는 지구_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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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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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것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이 세상을 뒤흔드는 비보였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셰닐에게만은 낭보였다. 아니, 한 사람쯤은 더 있을 것이다 라고 셰닐은 소리 없이 뇌까렸다.
‘왕푸친... 그 늙은이도 할아버지의 죽음에 춤을 출 것이다. 그 늙은이를 따르는 놈들도...’
셰닐은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포갠 채 침상에 누운 카나이마 1세를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눈을 감은 그의 모습은 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했다. 
황제의 침대 주위로 아이헨도르프와 정부의 각료들이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서 있었다.
그러나 셰닐은 조부의 유일한 혈육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치도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고함을 지리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조부가 자신을 불륜의 핏줄로 의심할까 얼마나 두려워했던가? 이제 그런 근심걱정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건강하게 웃으시던 분이...”
아이헨도르프는 비통함에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급서(急逝)하시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장관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시종들을 거느리고 정원을 산책하시던 중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고 하오.”
“아무런 조짐도 없이 갑작스럽게 말이오?”
아이헨도르프의 물음에 그 장관이 다시 대답하려 할 때였다. 셰닐이 불쑥 끼여들어 대답을 가로챘다.
 “이제 그걸 논의하려던 참이오, 아이헨도르프 박사. 그대는 즉시 조부님의 정확한 사인을 분석하시오. 무슨 까닭으로 조부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셰닐은 조부님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야말로 황제의 유일한 혈육임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제 자신이 카나이마 1세의 뒤를 이어 황제로 등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불의의 사태에 의연하고 명확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신하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이헨도르프는 셰닐에게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태손 전하.”
‘황태손 전하라고? 음흉한 늙은이. 혀는 번드르르하게 잘도 놀린다만 속으로는 날 놀리고 있겠지. 불륜의 씨앗 주제에 황제의 자리를 넘보려 하느냐고...’
셰닐은 내심 코웃음치면서 아이헨도르프의 얼굴을 외면했다. 그러고는 위엄을 갖추고서 장관들에게 당당히 소리쳤다.
“황제는 만백성의 어버이. 왕푸친이 반란을 일으켜 세상이 어지러운 지금 한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소! 난 조부님의 사인이 밝혀지는 대로 장례를 치르고 대관식을 가질 것이오! 이에 차질이 없도록 모든 신하들은 준비를 철저히 하시오!”
어린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겠노라고 선언하는 셰닐의 당돌함에 장관들은 아연실색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그중 누구 하나 반박하지는 못했다. 황제가 죽은 이상, 그 핏줄이 대를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던 그들 중 하나가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황태손 전하!”
한 사람의 복종은 금방 다른 이들에게 감염되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황태손 전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모두가 굴복한 것이다. 마침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황태손이다.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황태손이다. 두 세기 동안 이 세상을 통치해온 조부님은 신과 같으신 분이다. 아니 그분은 신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핏줄을 이어받은 나 또한 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불륜의 씨앗일 줄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열등감은 이 세상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욕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나를 음해 하는 증거는 모조리 말살할 것이다. 아이헨도르프! 그대 또한... 그 볼온한 증거들과 함께 사라져야 할 것이다.’
각료들 틈에서 황제가 서거한 이후의 일을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아이헨도르프는, 셰닐이 자신에게 살기를 품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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