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흔들리는 지구_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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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0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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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럴 수가...”
아이헨도르프는 황당함을 가누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허탈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그의 망연자실한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모르는 곳. 대형 모니터에 한 사람의 내부를 스캐닝 하면서 분석되는 정보가 차례로 나타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살아온 줄 알았건만...”
모니터가 비추는 모습은 인간의 육신이라는 껍데기 속의 기계였다. 놀랍게도 카나이마 1세는 인간이 아닌, 기계였던 것이다. 골격과 심장, 위 등 두뇌를 제외한 인체의 모든 기관은 이제껏 지구상에서 한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는 종류의 플라스틱과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헨도르프는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이 사실이 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혹시 컴퓨터가 오작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카나이마 1세는 살아 생전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고 기침을 하며 분노하고 땀을 흘렸다. 아이헨도르프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카나이마 1세와 함께 하면서 단 한번도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의심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캐닝이 계속되면서 모니터의 오른쪽 구석으로 인공장기와 신경계를 분석한 데이터가 출력되고 있었다. 그 데이터는 카나이마 1세가 식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혀내고 있었다. 그의 인공 위장엔 천문학적인 숫자의 미생물이 아직 살아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 미생물이 음식물을 분해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시켜 인공간에 저장함으로써 동력원으로 삼고 있었다.
기계를 감싸고 있는 외피는 특수하게 제조된 것으로 인체의 모공과 체모, 모근까지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지만, 그 내부에 뻗은 혈관 속엔 피 대신 윤활유가 가득 차 있었다. 심장은 이 윤활유를 인체의 구석구석으로 순환시키면서 신체 각 부위에 동력을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헨도르프를 놀라게 한 것은 카나이마 1세의 두뇌로부터 뻗어 나오는 각종 신경계와, 기계를 통제하는 초소형 컴퓨터를 연결하는 몇 개의 칩들이었다. 간뇌와 소뇌의 신경조직과 연결된 그 칩들은 모두 내부가 망가진 상태였다. 컴퓨터는 그 원인을 순간적으로 과도한 전류가 흘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슨 이유 때문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 신경 조직을 통제하는 칩이 불타버렸다는 것인가?”
극도의 좌절감과 절망감이 카나이마의 죽음을 불렀음을 아이헨도르프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신경 조직을 통제하는 칩들 중 멀쩡한 것은 두 개였다. 그것은 대뇌의 신경 조직과 연결된 칩들이었다.
“하나는 대뇌의 정보를 초소형 컴퓨터에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듯한데...”
나머지 하나의 칩의 기능만큼은 컴퓨터가 분석해내는 데이터로 추측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놀랍게도...”
아이헨도르프는 가슴이 설레었다.
“소뇌와 간뇌의 신경 조직을 제어하는 칩이 불타버린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기계부품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구나...”
그는 문득 얼마 전 아르고스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생명의 진화는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에요. 죽지 않으면 진화는 있을 수 없죠. 따라서 생명체는 영원히 살 수 없어요. 이 우주가 영원하지 않듯이...

그때 얼마나 커다란 불안감과 절망감이 그를 휘감았던가? 그러나 이제 그에겐 또 다른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만약 아르고스의 대답이 옭은 것이라면... 설혹 아르고스의 대답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내가 죽기 전 유전공학의 연구로 영생의 비밀을 밝혀낼 수 없다면... 이 기계를 이용해서라도 보다 오랜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카나이마 1세의 간뇌와 소뇌의 신경조직을 통제하는 칩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그것만 성공한다면, 아이헨도르프는 카나이마 1세처럼 불가사의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카나이마 1세가 인간이 아닌, 기계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했다.

다음 날 신류원은 카나이마 1세의 사망 원인을 발표했다. 물론 그 사망원인은 노인성 질환 중 가장 대표적인 심장마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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